점점 사라지는 추억의 ‘성냥’ 그 처음과 마지막까지

영웅본색 주윤발 (출처 – Daum영화 )

 

바바리 코트에 성냥개비 좀 물어본 사람이라면  ‘성냥’하면 바로 영화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제일 먼저 떠오를테다.

하지만 어느순간 이 성냥은 점점 자취를 감췄고 생일 케이크 촛불을 붙이거나 제사에 향을 피울 때 말고는 딱히 볼 일이 없어졌다.  초등학생의 대다수는 성냥에 붙여 보지 못했으며 이제는 더이상 찾아보기도 힘든 ‘추억의 물건’으로 전락했다.

 

성냥의 종류

성냥은 대게 두 가지 종류로 마찰성냥과 안전성냥으로 나누어 진다.

마찰성냥은 흔히 딱성냥이라고 하며 벽이나 돌 같은 딱딱한 곳에 마찰시키면 어느 곳에서나 발화되는 성냥을 말한다.  마찰성냥은 황린성냥,  적린성냥,  황화인성냥 등이 있다.  특히 황화인성냥은 인체에 해롭지 않은 삼황화인을 사용해 현재 소량이지만 유일하게 마찰성냥으로 제조되고 있다.

안전성냥은 마찰성냥이 자연발화 위험이 높아 이를 대신하기위해 만들어졌다.  성냥 중에서도 가장 널리 쓰이며 우리가 성냥이라 부르는 것은 보통 이 안전성냥을 가리키는 말이다.  발화연소제를 성냥갑의 마찰면에 마찰시켜 발화한다.  나뭇개비 끝에 가연제와 산화제,  그리고 마찰 시에 고온을 일으키며 발화를 쉽게 하기 위한 조절제로서 유릿가루 등을 섞은 뒤 접착제를 발라서 건조해 성냥개비를 만든다.

 

우리나라 불의 역사 

우리나라 4대 명절 중 하나인 ‘한식(寒食)’에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이 바로 불과 관련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일 년마다 사용하던 불씨를 모두 끄고 임금이 준 새로운 불씨를 전달 받았다.

하지만 불씨를 전달하는 속도가 느려 매번 해가 지고 다음 날이 되어야 불씨를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임금이 주는 불씨가 오기 전에 불을 지펴 밥을 먹는 것은 불경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불씨가 오기 전까지 찬 음식을 먹으며 요기를 하는 풍습이 생겼다.

이렇듯 조선시대는 세계 다른 나라들이 성냥제조 수출에 각축전을 벌일 때도 쭉 화로에 소중히 보존한 불씨에 붙여서 발화시키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불을 이용해 왔다.

1880년 개화승이  ‘이동인’이 일본에 갔다가 처음으로 성냥을 가지고 들어왔긴하나 생활용품으로 대중화된 것은 1910년대에 일본인들이 인천에 조선성냥을 설립하고 나서다.

이후 1945년 광복 후 전국에 300여 개의 수공업 형태의 공장이 설립되었고 70년대부터는 자동화 시설로 전환함에 따라 업체 규모가 대형화되었다.  최근에는 자동점화장치인 라이터의 보급 증가로 인해 성냥의 수요가 급격히 줄었으며 2017년 7월에  ‘경남산업공사’를 마지막으로 한국에 모든 성냥공장이 문을 닫게 되었다.

 

라이터에 밀려난 성냥의 짧은 역사

성냥의 역사는 독일의 브란트가 저절로 불이 붙는 ‘인(燐)’을 발견했던 1669에 시작된다.  그는 은을 금으로 바꿔 줄 수 있는 물질을 찾기 위해 각종 연금술 실험을 하던 중 처음 인을 발견했다.

그 뒤로 오랜 시일을 흐른 1827년에 딱성냥이 처음 개발되면서 독성이 적은 붉은 인을 사용한 다양한 종류의 성냥이 개발됐다.  그래도 인의 강한 독성 때문에 턱뼈가 괴사하는 고약한 부작용이 생겨났고 잘 못 다루면 화재의 원인이 되기도 했으며 자연발화의 위험이 컸다.

이런 위험을 방지하고자 오늘날 성냥 중에 가장 널리 쓰이는 안전성냥은 1910년 미국에서 개발됐다.  편리하고 안전했지만,  처음엔 비싼 특허 때문에 아무나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미국 대통령의 요청으로 성냥 회사가 특허권을 포기하면서 성냥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요즘은 금속 표면을 마찰시켜서 불을 만드는 값싼  ‘라이터’가 일반화되면서 어렵게 개발된 안전성냥은 한 세기도 버티지 못하고 우리의 서랍 속으로 다시 밀려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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